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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여름날의 단상
17-08-10 14:07 2,428회 0건


한 여름날의 단상

-변현자

 

 

올해는 온갖 생물들이 애타게 목말라하던 가뭄 끝에 얄밉게도 질금 질금 장마가 오는가 싶더니, 급기야는 국지적으로 퍼붓는 날이 많았다.

하늘이 제멋대로다.

 

그런데 2017725일 오늘은 모처럼 갠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.

가을하늘처럼 드높고, 새파란 하늘! 그 밑으로 손에 잡힐 것 같은 수많은 새하얀 구름, 그 위로 내려쬐는 햇살! 구름은 햇살을 받아 찬란한 은빛이다.

 

나는 어느새 그 빛에 홀려서 60년 전으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.

나의 상념은 구름 속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.

잠그지도 않은 나무 빗장 대문이 삐거덕 하고 열린다.

침침한 터널같은 입구를 5~6미터 들어서면 널찍한 안마당이 보인다.

학교에서 돌아오니, 덕구가 제일 먼저 반긴다.

큰 덩치에 흙 묻은 네발로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틈새로 채송화가 비죽 얼굴을 들이민다. 그 뒤로 봉숭아 백일홍, 새빨간 색으로 불타는 사루비아 맨드라미...

장독대 옆에 아무렇게나 꾸며진 꽃밭이 그래도 키순서 대로 정렬은 잘 되어 있다.

아마도 맨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장미나무가 대장인가 보다.

 

할머니는 싸리나무 울타리 밑에 호박넝쿨을 조심스럽게 뒤적인다. 제때에 애호박을 따야지 어쩌다 많이 자라도록 놓칠라 치면 늙은 호박이 된다. 어머니는 너 댓 이랑쯤 되는 울 안 텃밭에 촘촘히 나온 어린 열무를 솎아 마당 가운데 있는 화덕에 씻은 열무를 그득히 배게 넣고 국을 한 솥 끓인다. 가끔은 앞강에서 잡아 온 달팽이를 넣고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는데, 그것은 아욱국이 제격이다.

 

집에서 성당 옆을 지나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강이다. 약간 가파르지만, 깨끗한 돌 틈에 까만 달팽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다. 갈산 건너편 강상면에 배 타고 건너가면 더욱 환상적이다. 완만한 모래사장, 적당한 수심에 발가락이 훤히 보이는 깨끗한 물, 물살도 세지 않고 정말 쾌적하다.

 

나는 요즘 양평이 너무 좋다.

서울에서 50년 동안 떠돌다 고향을 찾아온 지 올해로 몇 년 째다.

요즘 기억상실에서 벗어나듯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정겹게 되살아난다.

 

젊었을 때는 왜 좋은 것 을 몰랐을까?...

나이를 먹는 것이 아주 좋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.

이런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일찍 저세상으로 가버린 사람들은 안 됐다. 그런 의미에서도 노인복지관에 건강하게 나오시는 분들은 최소한 복 받은 인생이다.

 

모두 파이팅!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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